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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간론파/사이오마

[사이오마/소설번역] 그 압박감이 무서워서

 

 

 

 

온 세상이 잠든 듯 한산한 밤이었다.
칠흑 같은 밤하늘에는 조각 같은 보석을 박아놓은 듯 별들이 제각기 반짝인다. 졸음을 쫓아버리는 듯한 차가운 밤바람이 초목을 조그맣게 흔들고, 그리고 뺨을 어루만졌다. 밖에 핀 백합이 밤바람에 흔들리며 은은한 향기와 어두운 빛을 발한다. 달이 없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될 것 같은 어두운 세계에서 사이하라는 기숙사 앞에 우두커니 서있는 오마를 발견했다. 이런 시간에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오마는 살랑거리는 머리카락을 밤바람에 흔들리면서 그 커다란 밤색의 두 눈동자에 보석의 빛을 담았다. 미소가 사라진, 어딘가 고지식함을 느끼는 표정이었다.희끄무레한 달빛에 비춰진 그는 무척 예쁘고 아름다웠다.하지만 그 얼굴은, 희미하지만 피로한 기색이 배어 있다. 밖이 어두운 탓일지도 모르지만, 눈 밑에는 희미하게 다크서클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 모습의 오마에게 사이하라가 다가가 말을 걸었다.


「...오마군, 최근 제대로 자고 있어?」


사이하라가 그렇게 묻자 오마는 활짝 웃으며 대답한다.


「잘 자고있다구-?」

「그래? 다크서클이 희미하게 보이니까... 잠을 잘 못자는건 아닐까 해서」

「사이하라쨩의 기분탓이야!」


밝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오마는 역시 피곤해 보인다.사이하라는 의아스러운 듯이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한편 오마는 평소와 다름없이 거짓말을 쏟아냈다. 솔직히, 최근에는 거의 완전히 잠들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숨도 못 잔 것은 아니어서 오마는 그렇게 대답했다. 웃으며 대답하지만, 사이하라는 그렇게 쉽게 속아주지 않는 것 같다. 의심의 눈길이 계속 이쪽을 향하고 있다. 걱정하는 듯한 표정을 아무래도 보고 있을 수 없어 오마는 억지로 타일러 버렸다.


「그럼, 잘자 사이하라쨩!」

「에? 으, 응...」


조금 당황한 사이하라를 내버려두고 오마는 도망치듯 기숙사 안으로 뛰어 들었다. 자신의 계단을 오르는 공허한 소리만이 이 자리에 울렸다. 어두컴컴한 기숙사는 평소보다 더 기분나쁘게 느껴졌다.

본인의 방에 들어가 문을 살짝 닫고 오마는 꺼림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별로 못자는건 아니야. 원래 수면시간이 남들보다 적어서 이정도의 잠만 잔다면 충분했다. 단지, 특정 상황에서는 반드시 잠을 잘수 없게되어버린것 이었다.

오마는, 기숙사 방의 부드러운 침대 위에서 뒹굴었다. 푹신푹신한 그것은, 한 번 깊이 가라앉아, 몸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렇게 드러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본다. 역시 잠이 모자라는 건지, 어디선가 졸음이 찾아오는 것 같다. 점점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면서, 오마는 멍하니 몸을 맡겼다. …하지만, 느긋하고 상냥한 졸음은 일순간에 사라져 버린다. 꿈의 세계로 끌려가던 의식은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했다.급격한 불안에 사로잡혀 더 이상 잠을 이룰 수 없게 되었다. 온몸에 땀이 흐르는 듯한 공포를 느낀다.불안이 마치 불꽃처럼 번져 간다. 그것은 점차 증가하고 맥박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특별히 무슨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호흡이 가빠졌다. 산소를 잘 들이마실수가 없다. 이 방에서 산소를 빼앗겨 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괴롭다. ...그저, 괴로울 뿐이다.


(...위험해... 숨이..)


흐트러진 호흡을 가다듬으려 하지만, 그것은 전혀 평소의 컨디션을 되찾으려 하지 않았다. 심장을 짓누르는듯한 괴로움이 오마를 덮친다. 천식 발작 같이 고통스러운듯한 숨결만이 정적에 찬 방을 가득 메웠다.

--"천장이 떨어진다". 아까부터 그런 생각이 들어 견딜 수 없었다. 조금씩 무겁게 밀어붙이는 그런...속이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래, 오마가 잠들지 못하는 어떤 상황하란 "이것"이었다. 위를 쳐다본채로 잠을 청하면 주체할 수 없는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힌다. 몸은 가위에 눌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빨리, 빨리 여기서 도망쳐야 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이대로 무너져 버린다. 끝없는 공포에 삼켜져버린다. 오직 혐오감만이 오마를 지배한다. 이대로 자신을 압박해 엉망으로 뭉개져 버릴 것 같은 느낌만이.

그제서야 오마는 억지로 몸을 움직여 고개를 돌렸다.다가오는 압박감은 조금씩 사라지지만 호흡은 여전히 고르지 못했다. 쿵쾅쿵쾅 정신없는 고동이 귓전에 들린다. 눈을 꼭 감고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어떻게든 자신을 진정시키려 마음속으로 괜찮다 말하지만 뇌리에는 어딘가의 광경이 플래시백한다. 차갑고 지독하게 무기질적인 방. 상처받은 두 소년과 작은 빈 병과 석궁. 그리고 체내를 둘러싼 무겁고 고통스러운 무언가. 그리고, 점점 다가오는 죽음의 감각. 무거운 중압.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어지는 끔찍한 광경이었다. 본적도 경험해본적도 없을 터인데 어째선지 몸이 기억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오마는 불안에 휩싸였다.

얼른 잠들어버리면 두려움도 느끼지 않을것이다. 오마는 눈을 감고 필사적으로 잠자리에 들려고 하지만, 졸립던 느낌은 완전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가쁜 숨을 고르기 시작했던 호흡이 다시 혼란해졌다.폐가 조이는 것처럼 아팠다, 오늘은 더 이상 아무리 노력해도 잠들 수 없을 것 같다, 그 어느 때보다 뇌리에 스치는 광경이 선명해 더욱 불안했다. ...지금은, 누구라도 좋으니까 공연히 만나고 싶었다.

오마는 침대에서 유유히 일어나더니 재빨리 자기 방을 떠났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물론 그였다. ...다름이 아니라 사이하라의 일이다. 거의 무의식적이었는데, 내 다리는 제멋대로 사이하라의 자기 방 앞까지 나를 데리고 왔다. 나로서도 웃기는 이야기다. 실컷 놀려오던 상대에게 이렇게 의지해서 와버리다니, 특기인 피킹으로 살며시 열쇠를 열고 들어가니 별 놀랄 것도 없이 침대에 앉아 책을 읽던 사이하라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어라, 오마군? 자러간게 아니었어...?」

「...왠지 잠이 오지 않아서 말야~!」


오마는 씁쓸한 미소로 그렇게 말하며 사이하라의 침대에 힘껏 뛰어들었다. 삐걱거리는 침대 소리가 울려 퍼지고, 담요와 시트에 머물러있던 달콤한 향기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잠깐... 나도 이제 곧 자려던 참인데...」

「그럼 같이 자자!」

「에?...으,응」


사이하라는 거절할 수 없었다. 평상시의 오마 였다면 시원하게 거절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까 기숙사 앞에서 마주쳤을 때 오마의 표정이 떠올랐다. 분명히 잠이 부족한 그를 어떻게 해서든 재워주고 싶었던 것이다.

반억지로 침대에 들어간 오마와 등을 맞대고 뒹굴었다.아무리 그의 몸집이 작다고 해도 남자 두명이 한 침대에 누우면 상당히 좁게 느껴진다. 발끝이나 허리가 희미하게 접촉해, 서로의 체온이 섞인다. 사이하라의 차가운 몸에 오마의 따뜻한 체온이 전해지면서 사이하라는 왠지 깊은 안도감를 느꼈다. 자신보다 높은 체온이 묘하게 상쾌하다. 한가롭게 그 체온을 느끼고 있자니 조금 맞닿은 오마의 몸이 가늘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떨림이 일정한 리듬을 새겨 직접 전해져 온다.


(...오마군, 추운걸까?)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사이하라는 돌아누워 오마의 쪽을 보았다. 담요는 제대로 그 작은 몸을 덮고 있고, 오늘은 그닥 춥지 않은것도 아니지만 그렇게나 기온이 낮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오마는 가늘게 떨고 있었다. 사이하라는 그런 오마를 응시하다 이상하다는듯 두 눈을 깜빡였다. 갑자기 불안에 휩싸여 사이하라는 떨고있는 오마의 어깨에 손을 뻗었다.


「...오마군?」

「--읏..!」


사이하라의 손이 오마의 어깨에 닿는 순간 오마는 경련하듯이 벌떡 일어났다. 닿은 손은 그의 창백한 손에 의해 세차게 두들겨 맞았고, 갈 곳을 잃은 사이하라의 오른손은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 진심으로 겁을먹은 듯한 표정으로 오마는 침대 위에 주저앉은 채 사이하라를 응시했다. 불안한 듯 펼쳐진 오마의 안색은 나빴고, 밤색의 두 눈동자가 희미하게 흔들리고고 있었다. 약간은 흐트러진 호흡소리가 울리고, 사이하라는 눈동자에 근심의 빛이 서린채 오마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야? 괜찮아?」

「......갑자기 어깨 만져져서 깜짝 놀랐어~! 유령인가 뭔가 생각했다니까!」

「아니, 그치만 같이 침대에 누워있었으니까 나일 가능성이 가장 높겠지...?」

「그렇지만 말야! 아~, 정말 놀랐어! 거짓말이지만」


그렇게 말하며 오마는 미소를 지었다. 쓴 빛을 머금은 일그러진 미소를, 당연하지만 사이하라는 그 웃는 얼굴이 억지로 만들어진 미소라고 이해할수 있었다. 속이는 데 능한 오마였지만, 지금에 와서는 전혀 속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불안한 마음만 점점 커져갔다. 그것이 얼굴에 비친것일까, 오마가


「이상한 얼굴이네!」


무슨 말을 하는건가. 뭔가 걱정의 말을 하려고 했지만, 사이하라는 그럴 수 없었다. 오마가 어느 때와 같이 시끄러운탓일까, 아니면 그의 거짓말을 들춰내는 것이 두려워졌기 때문일까.


「그럼 잘자!」


명랑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오마를 사이하라는 아직도 불안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오마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는 것 따위는 모르는 채로.




*




다음 날 아침, 자명종이 울리지도 않았는데 7시 정각에 오마는 눈을 떴다. 원래 그런 체질이기 때문이다.아무리 잠이 부족해도 일어나는 시간은 변하지 않는다. 평균 수면 시간이 남보다 적은 것은 언제나 있는 일이니까 아무렇지도 않지만. 잠을 자다가 땀을 좀 흘렸는지 옷이 살짝 맨살에 밀착해서 불편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그 꿈은 안 꾼 것 같아. 오랜만에 누군가와 함께 자서일까.

결국 그 후로도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위를 향해 누운 것도 아닌데 불안감이 큰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것은 마치 나를 통째로 삼켜 심해로 끌고 가버릴 것처럼, 그대로 수압으로 나를 죽여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엉뚱한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사이하라가 만졌던 그 순간에도 그 다정한 손이 자신을 압박해 버릴 것 같아 두려웠던 것이다. 그런 일이 절대 있을 리가 없는데.

--압박감이 무섭다. 다가오는 듯한 감각이 두렵다.

강하게 짓눌리는 듯한, 호흡을 빼앗기는 듯한, 좁은 장소에 갇히는 듯한, 그런 감각이 무서워 견딜 수 없다. 그것도 이것도, 자주 꿈에서 보는 "그 광경" 때문이었다. 제일 먼저 그 꿈을 꾸고 나서, 반듯이 누워 잠을 잘 수 없게 되어, 압박감이 무서워 견딜 수 없었다. 정말 한심한 일이다. 고작 꿈에 떨며 이제는 일상생활에조차 지장을 받고 있다. 어떻게든 이를 극복하고 싶은 참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슬슬 수면 부족으로 한계를 맞고 말 것이다.


(...정말, 한심해...)


앞머리를 넘기며 오마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힐끗 곁눈질로 침대를 바라보면, 사이하라가 기분 좋은 듯 작은 숨소리를 내고 있다. 아침에 약한건지, 잠이 깊은 편인지 소리를 내도 쉽게 일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덮인 그의 긴 속눈썹을 보자, 오마는 오른손을 살짝 사이하라의 얼굴에 뻗었다. 검지를 힘차게 쳐서 사이하라의 미간에 딱밤을 먹여주었다. 그러면, 사이하라는 정말로 싫은 얼굴을 하고 작게 신음했다. 그래도 깨어날 기미는 없다. "시시하네" 라고 웃으며 중얼거리고 오마는 사이하라의 방을 떠났다.아직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듯한 기숙사 복도는 소름돋을 정도로 조용했다. 나른한 자신의 발소리만 울려 퍼지고 왠지 허무해진다.

오마는 자기 방으로 돌아가 갈아입을 옷을 꺼내기 위해 옷장을 열었다. 방충제 냄새와 세제의 달콤한 냄새, 벽장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똑같은 옷이 겹겹이 늘어선 옷장은 상당히 무기질해보였다. 옷걸이에 걸린 옷을 집으려고 손을 뻗다가 오마는 옷장 안에 뭔가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반짝반짝 빛났던 그것은, 옷장의 어둠에 녹아 버린다. 그게 마음에 걸려 오마는 옷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 방의 옷장은 비교적 작고 좁지만 오마 정도의 체구라면 쉽게 몸을 움직일 수 있다. 안에서 빛나는 그것을 주우려고 하지만 옷장 안에는 아무것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아무래도 잘못 본 것 같다. 오마가 그렇게 인식할 때였다.

시야의 빛을 한순간에 빼앗겼다. 등뒤에서는 답답하면서도 가벼운 소리가 울렸다.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오마는 이해할 수 없었다. 황급히 뒤를 돌아보지만, 거기에는 똑같이 어두운 어둠이 퍼지고 있었다. 옷장문의 조그만 틈새로 들여다보는 빛줄기로 볼 때 문이 닫혀버린 것 같다. 아주 적은 빛을 더듬어 문을 열려고 하지만, 무엇인가가 막혀 있는지 문은 열리지 않는다. 전 체중을 맡겨 문에 부딪쳐 보지만 어째서인지 끄떡도 하지 않는다.


「하...? 거짓말이지......?」


오마는 경련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중얼거림은 옷장의 끝없는 어둠 속으로 녹아든다.완전히 닫힌 문을 앞에 두고 오마는 망연했다. 밖에서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아마 아직 아무도 눈을 뜨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움을 청해 보아도 아무도 이곳을 열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이해하는 순간, 마음속에 공포의 불꽃이 일기 시작한다. 그것은 살랑살랑 흔들리며, 점차 커져간다. 맺힌 식은땀이 볼을 타고 흘러간다. 발밑에서 등줄기로 오싹오싹하고 불쾌한 감각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간다. 새삼스럽게도 이 옷장은 상당히 좁고 어둡다. 마치 상자 안. 우리 안. 상하좌우 닫혀 있다.무의식적으로 위를 올려다보면 바로 저기에 어두컴컴한 속에서 자신을 비웃는 천장. 그것을 인식한 찰나, 오마는 헉 하고 숨을 삼켰다.

천장이 떨어지는, 또 그런 착각. 그리고 닫힌 좁은 공간, 폐색감. 느껴지는 압박감에 서서히 시달려 숨을 쉬기가 힘들다. 빨리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이 공간에 다가오는 천장에 짓눌리고 만다.


「저기! 아무도 없어!? 열어줘!」


오마는 문을 세게 두드리며 그렇게 외쳤다. 최대한 큰 소리로, 그러나 자신의 목소리는 옷장 안에서 울리며 자신에게 돌아올 뿐이었다.


「대답해줘...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까 열어줘...!!」


필사적으로 문을 두드리며 외친다. 문을 두드리는 오른손이 몹시 아팠지만 오마에게는 그런것에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뇌는 질퍽질퍽한 어둠과 공포에 지배 당한지 오래다. 더 이상 냉정할 수는 없다. 이대로 여기서 평생 못 나갈지도 몰라. 영원히 갇힌 상태일지도 몰라. 닫힌 공간은 질색이다. 어쩔 수 없이 불안해지고 답답해지니까, 천장이 떨어질 것 같다고 느낄 만큼 무서워서 견딜수 없다.


「열어달라니까...! ...부탁이니..까...제발......」


눈 안쪽이 뜨거워지고 눈꺼풀에서 부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오마는 어린 아이처럼 흐느껴 울며 정신없이 도움을 청했다.


「여, 열어달라니까... 아....」


보기 흉하게 떨리던 자신의 목소리가 옷장 안에서 쓸쓸한 기색으로 흘러내렸다.


「하아...아...웃,...으...우으......」


다리에 힘이 풀려 오마는 그 자리에 웅크렸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어지럽다. 팔다리가 미세하게 저리고 고동이 비정상적으로 뛰면서 가속한다. 게다가 급격하게 구토감이 몰려오자 오마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를 손으로 감쌌다. 뱃속이 텅 비어 그저 고통스러워 할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괴로워서 눈물은 뚝 뚝 넘쳐 흐른다. 차츰 숨이 가빠지면서 오마는 더욱이 공포에 사로잡혔다. 숨을 잘 못 쉬겠어, 들이마셔도 들이마셔도 산소는 체내에 들어오지 않는다. 의식이 몽롱한 가운데 오마는 필사적으로 산소를 찾아 숨을 들이쉰다. 그런데도 괴로움은 더해져 간다. 이러다 죽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힉...힛,...하아......흐...」


목이 쉬어 쇳소리가 난다. 이상하리만큼 호흡이 흐트러졌다. 격렬하게 어깨를 들썩이며 오마는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몇 번 숨을 들이마셔도 산소가 부족하다. 한심한 오열만이 입에서 새어 나온다. ...아, 이대로 나는 여기서 죽는구나. 오마는 몽롱한 의식에서 그렇게 생각했다. 공포와 불안이 뒤범벅이 되어 더 이상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누구라도 좋으니까 여기서 꺼내주길 바랬다. 이 압박감에서 벗어나길 바랐다. 마지막으로, 이런 괴로움을 겪어야 한다니, 그런 건 --..


「......오마군?」


문 너머로 낮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고 오마는 도움을 청하려 하지만 너무 흐느껴 우는 탓에 바람새는 소리밖에 낼 수 없었다. 저쪽에 닿을 수 있는 것은 비참한 오열뿐. 적어도 라는 생각에 오마는 떨리는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안에 있는거야!?」


건너편에 있는 사람은 초조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오마는 대답 대신 끊길 듯한 의식 속에 다시 한 번 문을 두드렸다.


「기다려, 지금 열테니까...!」


그렇게 말하고 그는 문을 강하게 흔들었다. 맞은편에서도 열리지 않는걸까 하고 일순간 절망했지만, 의외로 옷장 문은 쉽게 열렸다. 방안의 불빛이 시야에 가득 퍼지면서 휘감겨 있던 두려움을 날려버린다. 주저앉아 비정상적인 호흡을 반복하는 오마를 보고, 그-- 사이하라는 황급히 달려갔다.

오마의 눈앞에 쭈그리고 앉아 그의 모습을 확인한다.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에 그만 당황했지만, 이럴 때일수록 이쪽이 초조해 하면 좋지 않다. 증상을 보니 오마는 과호흡을 하는 것 같았다. 완전히 냉정함을 잃었고 증세는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았다.방을 둘러보며 쇼핑백을 찾지만 분명 쇼핑백 응급처치는 위험하다고 배웠을 터... 그렇다면 도구는 사용하지않고 처리 할수밖에 없다.


「...오마군, 일단 진정해. 괜찮아, 숨을 들이마셔봐」


마치 자신에게도 타이르듯, 사이하라는 그렇게 조용히 말했다. 과호흡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사이하라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상당히 겁을 먹고 있는 것 같다. 아마 사이하라의 목소리도 별로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


고민하던 사이하라는 주저없이 오마의 몸을 껴안았다. 어쨌든 그를 진정시키고 싶다는 일념이었다. 고통 받는 오마의 모습은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러나 팔에 감긴 오마는 안기는 순간 거칠게 어깨를 흔들며 사이하라를 거절했다. 힘껏 떠밀린 사이하라는 반사적으로 오마를 놓는다. 주저앉은 채 아래를 향해 괴롭게 헐떡이는 오마에게 다시 다가가 그의 등에 손을 뻗었다.


「...괜찮아. 괜찮으니까, 나에게 맞춰서 숨을 쉴수 있겠어? 자, 천천히......」


깨지기 쉬운 물건을 다루듯 사이하라는 오마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했다. 천천히 숨을 내쉬도록 재촉하지만, 아무래도 잘 되지 않는 것 같다.필사적으로 호흡을 가다듬으려 하고 있지만, 흐트러진 호흡은 원래대로 돌아올 것 같지 않다. 눈물로 얼굴이 엉망이 되어 과호흡에 빠진 오마를 더 이상 두고 볼수 없었다.


「오마군, 싫으면 아까처럼 밀쳐주면 되니까」


사이하라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고는 오마의 양 볼을 살짝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리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사이하라는 오마의 입술에 자신의 것을 포갰다. 살짝 닿기만 하는 짧은 키스였다. 약간 짠 맛이 난다. 눈물에 젖은 눈을 엷게 뜬 채 오마는 순순히 그 키스를 받아들였다. 진정시키듯 자신의 등을 어루만지는 손의 체온이 편안했다.

사이하라의 기억 한구석에 남아 있던 지식, 그것은 키스가 과호흡의 대처법으로서 유효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파트너의 키스가 상대방에게 안정감을 주고 과호흡을 진정시켜 준다고 한다. 오마와 파트너는 아니지만 오랜 기간 이곳에서 지냈기 때문에 나름대로 신뢰관계는 구축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은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 도박이나 다름없었는데 기적적으로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오마의 호흡이 조금씩 잦아든다.


「......진정 됐어?」

「...응, ...고마워」


아직 호흡이 완전하게 갖추어지지는 않았지만, 꽤 안정된 것 같다. 천천히 숨을 내쉬면서 오마는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했다.


「다행이다... 뭔가 소리가 들려서 와보니 오마군의 방이었고, 문은 열려있고...걱정했어」

「에...? 나, 문 잠궈 뒀었는데...」
「열려있던데? 어째서인지 옷장의 문이 잠겨있었지만...」

「그렇, 구나...」


편리하게도 이 방의 옷장에는 자물쇠가 달려 있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문을 닫은 것일까. 바람에 마음대로 닫혔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방의 열쇠도 열려 있었다고 하면, 누군가가 짠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일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저기, 오마군」

「뭐야? 사이하라쨔--」


갑작스럽게 시야는 사이하라의 품속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안겨있다는 것을 인식한다. 마음속으로 안심할 수 있을 법한 이 행위는 오마에게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싫은 생각이 가슴에 솟는다. 공포조차 느끼며 오마는 저항했다. ......또, 압박감이다. 무엇보다도 두려워하는 이 고통스러운 느낌. 안기는 것조차 혐오와 공포를 느끼기 시작한다.


「...놓아주지 않을래?」

「...싫어」

「놓으라고 말 했잖아!」

「...놓지 않을꺼야」

「정말로 그만 두라니까! 싫다고! 죽고싶은거야?」


불쾌감을 일절 감추지 않은 표정으로, 오마는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혐오하는 기색을 사이하라에게 전하려 하지만 점점 목소리가 떨리며 위세가 사라져 간다. 그것은 분명, 이 포옹이 어쩔 수 없이 따뜻하고 고통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공포 때문인지 또 시야가 어른거렸다.


「놔... 놔달라니까... 부탁이니까... 놓아달라고......사이하라쨩......」

「...놓아주면, 또 너는 무언가에 겁을 먹겠지」

「...」


귓가에 부드러운 속삭임에 오마는 저항을 멈추었다.고통스럽고 그야말로 또 과호흡을 일으킬 것 같은데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었다. 이 압박감이 무서워서 어쩔수 없지만 이 감각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상대가 사이하라인 탓인지 마음에 소용돌이치던 공포와 불안은 순식간에 다른 감정으로 바뀌고 있었다.


「...요즘 잠을 자지 못하는것도, 무슨 이유가 있는거지? 억지로 듣지 않을테니까, 언젠간 말해줘. 그리고,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괜찮으니까... 아무것도 걱정하지마」

「......사이하라쨩」


자신이 무엇에 겁을 먹고 있는지도, 괜찮다는 근거조차 없는데 사이하라는 그렇게 잘라 말했다. 그런데도 묘하게 설득력 있는 그 말은 오마의 마음을 슬쩍 파고들었다.

사이하라는 팔에 오마를 안은채 그 작은 몸을 톡톡 부드러운 리듬으로 토닥인다. 마치 어린아이를 재우기라도 하듯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상하리만큼 고집을 부리던 그가 거짓말 같이 느껴졌다. 안아주면 한순간에 거절했는데, 지금은 순순히 내 팔 안에 있어준다. 무엇에 겁을 먹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침착함을 되찾아 주어서 몹시 안도했다.


「...어라, 잠들었어?」


잠시 후 희미한 숨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린다. 가만히 얼굴을 들여다보니 뺨에 눈물 자국이 남은 앳된 얼굴이 거기 있었다. 거짓말만 하던 장난꾸러기 같은 그의 얼굴에서 완전히 독기가 가셨다. 마치 인형처럼 그 얼굴은 예쁘고 아름다웠다. 오마의 눈가에 달라 붙은 눈물을, 사이하라는 검지손가락으로 살짝 쓰다듬으며 미소지었다.


「...잘자, 오마군」


좋은 꿈을 꾸게 해주는 그 마법의 말은, 더이상 오마에겐 들리지 않았다.




*





「--오야오야? 욕망에 충실한 사이하라군 이잖아!」

「...모노쿠마



기분 좋게 잠든 오마를 침대에 눕힌 뒤 사이하라는 방을 나와 기숙사 복도에 와 있었다. 그곳에는 이 학원의 학원장인 모노쿠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잘된것같네!」

「응, 네 덕분에 말이지」


즐거운듯 말하는 모노쿠마에게 사이하라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렇게 대답했다. 아침의 서늘한 바람이 뺨을 어루만져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우뿌뿌! 설마 사이하라군이 그런 부탁을 할줄이야!」

「의외였어? 나는 어떻게 해서든 그와 졸업하고 싶으니까 말이야, 모노쿠마에게 부탁하는 수 밖에」

「사이하라군의 그런 일그러진 면도 좋네!」

「...그보다 모노쿠마는 언제까지 여기 있을 작정이야?」

「학생의 졸업을 끝까지 지켜보는 것이 학원장의 일이니까! 뭐 역시 너무 기니까 도중에 집어치울 생각이었지만, 이건 이것대로 재미있으니까 결과 ok네!」


모노쿠마는 볼을 붉히며 황홀한듯 말했다. 그러자 사이하라는 기숙사 쪽을 돌아보며 불쑥 말한다.


「...오마군, 정신이 너무 망가져서 한계에 가까웠으니까, 그가 졸업할때까지 내가 옆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안되겠네」


휘몰아친 차가움을 머금은 바람이, 사이하라의 머리카락과 초목을 흔들고 간다. 기숙사 옆에 자라고 있던 새까만 백합이 마냥 기쁜 듯이 웃고 있었다.


「사이하라군」


모노쿠마가 고지식한, 그러면서도 진심으로 즐기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사이하라를 불렀다. 시선만 모노쿠마에게로 향하며 「뭐야?」라고 사이하라는 작게 대답한다. 「우뿌뿌」모노쿠마는 웃으며 고한다.


「--알고있어? 유감스럽게도, "자신이 망가져 있다" 는 것은 본인 스스로도 좀처럼 눈치채지 못하는구나!」


완전히 떠오른 아침 햇살이 안뜰을 은은하게 비추었다. 주황빛을 띤 빛은 사이하라의 무시무시할 정도로 맑은 눈망울에 순간 붉은 빛으로 다가간다. 바람이 부는 소리만 이 자리에 울린다. 잠시의 침묵이 흐른 뒤 사이하라는 한 번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눈을 뜨며 대답했다.


「...알고있어」


사이하라는 더할 나위 없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